해남 겨울배추를 걷는 날, 밭에서 이미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해남의 겨울 밭은 아침마다 하얗게 덮입니다. 밤새 내린 서리와 눈이 겉잎 위에 그대로 얹혀 있다가, 해가 들면서 천천히 녹습니다. 사람들이 밭으로 들어가는 건 그다음입니다. 고향시래기의 한 해에서 가장 바쁜 계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추위를 견딘 잎이 달아집니다
해남이 겨울 배추 산지로 자리 잡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다에 둘러싸인 땅이라 한겨울에도 밭이 완전히 얼어붙지는 않는데, 바닷바람만큼은 차갑게 들어옵니다. 배추는 그 추위를 견디면서 속에 단맛을 쌓습니다. 얼지 않을 만큼만 춥다는 것, 그게 해남 겨울배추의 조건입니다.
여기에 황토가 더해집니다. 황토밭에서 자란 배추는 잎의 조직이 치밀해서, 손으로 겉잎을 젖혀 보면 두껍고 탄력 있게 버팁니다. 같은 배추라도 여름에 자란 것과는 잎을 만지는 느낌부터 다릅니다.
우거지를 겨울 원물로만 만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따뜻한 계절에 빨리 자란 배추는 잎이 크고 수분이 많지만 조직이 성깁니다. 삶으면 금세 숨이 죽고, 국물에 오래 두면 형태가 남지 않습니다. 반대로 추위를 오래 견딘 잎은 삶은 뒤에도 제 모양을 유지합니다. 업소에서 우거지를 고를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이 성질입니다.


밭에서 이미 두 갈래로 나뉩니다
수확 현장을 보면 배추 한 포기가 통째로 포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겉잎과 속잎이 서로 다른 포대로 갑니다.
바깥쪽의 두껍고 진한 겉잎은 배추우거지가 됩니다. 오래 끓여도 뭉개지지 않는 탄탄한 식감이 여기서 나옵니다. 감자탕이나 뼈해장국, 추어탕처럼 솥에 오래 올려두는 메뉴에 쓰이는 것이 이 잎입니다.
안쪽의 연한 잎과 속잎은 봄동우거지로 갑니다. 조직이 부드러워 짧게 조리해도 금방 익고, 껍질을 따로 벗길 필요가 없습니다. 환자식이나 나물, 국거리, 급식 가공에 쓰는 쪽이 이쪽입니다.
한 번 섞이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가공장에서 아무리 정성껏 다뤄도, 밭에서 나뉘지 않은 원물을 나중에 갈라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품목이 결정되는 지점이 공장이 아니라 밭인 이유입니다.
고향시래기의 세 품목 중 남은 하나, 무청시래기는 아예 다른 밭에서 옵니다. 배추가 아니라 무를 뽑고 남은 무청을 걷어 오기 때문입니다. 같은 겨울 산지에서 나오지만 수확도 가공도 별도 일정으로 돌아갑니다. 배추밭 이야기가 우거지 두 품목에서 끝나는 건 그래서입니다.

포대마다 상태를 적어 둡니다
같은 날 같은 밭에서 걷어도 포대마다 상태가 조금씩 다릅니다. 물길에 가까운 자리의 배추는 수분을 더 머금고 있고, 볕이 잘 드는 자리의 것은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이 차이는 삶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수분이 많은 쪽은 자숙을 짧게, 마른 쪽은 조금 더 길게 잡아야 삶고 난 뒤의 식감이 고르게 나옵니다. 그래서 밭에서 포대를 묶을 때 상태를 표시해 두고, 가공장에는 배추와 그 표시가 함께 넘어갑니다.


산지에서 솥까지, 같은 날 안에
해남 산지 한복판에 가공 공장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밭에서 뽑은 배추를 이동 중 부패하지 않고, 가장 싱싱한 상태에서 즉시 세척하고 자숙합니다.
고향시래기가 자체 자료에서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가공장이 밭에서 멀지 않다는 사실은 문장으로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잎 색과 아삭함을 지키는 가장 큰 변수입니다. 원물이 트럭에 오래 실려 있을수록 잎은 숨이 죽습니다.
그날 걷어 그날 들어온 배추는 네 단계를 지납니다. 먼저 선별하며 씻고, 대형 증숙기에서 삶고, 삶아낸 우거지를 다시 한 번 씻어낸 뒤, 압축해 냉동 포장합니다. 자숙 온도와 시간을 정해 두고 관리하기 때문에 계절이 바뀌어도 삶은 정도가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밭에서 시작된 구분이 이 네 단계를 지나는 동안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 겨울철 작업의 대부분은 사실 그 일입니다.
1995년부터 반복해 온 겨울
고향시래기가 해남에서 처음 한 일은 무청을 말려 건시래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995년의 일입니다. 2008년에 법인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는 삶은 우거지와 시래기를 냉동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동결건조 방식을 들여왔습니다. 2015년부터는 우거지로 쓸 배추를 따로 길렀습니다. 밭에서 겉잎과 속잎이 갈린다면, 아예 그 갈래에 맞는 배추를 심는 쪽이 낫다고 본 것입니다.
방식은 그렇게 계속 바뀌었지만, 겨울마다 밭에서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눈을 털어내고, 겉잎과 속잎을 나누고, 포대에 상태를 적어 두는 일입니다. 서른 번째 겨울에도 같습니다.
"해남이 키우고, 30년 진심으로 담았습니다." 회사가 스스로 내건 이 문장이 가리키는 건 결국 이 밭에서의 반복입니다.